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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양귀자

가끔은 책 한 권이 내 인생의 거울이 되어줄 때가 있습니다. 양귀자 작가의 **《모순》**은 제게 그런 책이었어요. 처음 이 책을 손에 든 건,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이 조금 지쳐 있던 어느 겨울이었습니다.

인생을 참 성실하게 살아보려고 애쓰는데도, 설명할 수 없는 허무함과 씁쓸함이 자꾸만 따라오는 시기였거든요. 분명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이게 정말 괜찮은 삶인가?”라는 질문이 마음 한 구석에서 계속 고개를 들던 때였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의 제목을 보게 되었고, 마치 누군가가 내 마음을 읽고 제목을 지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내 인생도 참 모순덩어리 같지’ 하는 자조 섞인 웃음과 함께 조용히 책을 펼쳐보게 됐습니다.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죽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인가.”

소설의 첫 문장부터 가슴을 후려쳤습니다. 주인공 안진진이 던지는 이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고민이 아니라, 그녀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실존적 딜레마였거든요.

안진진의 삶은 그 자체로 모순의 연속입니다. 시장통에서 억척스럽게 생계를 꾸려가는 엄마와, 행방불명과 귀가를 반복하며 가족의 곁을 떠나고 돌아오는 아버지. 그리고 엄마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우아하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 이모.

“같은 얼굴을 하고 태어났지만, 엄마와 이모는 서로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안진진은 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삶 사이에서 방황합니다. 엄마의 삶은 현실적이고 투박하지만, 그 안에는 생존을 위한 강인함이 있습니다. 이모의 삶은 우아하고 안정적이지만, 그 안에는 뭔가 비어있는 듯한 공허함이 있죠.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선택의 순간들을 떠올렸습니다. 돈은 조금 덜 벌더라도 마음이 편한 삶을 살 것인가, 혹은 마음이 조금씩 닳아가는 걸 알면서도 더 많은 보수를 위해 버틸 것인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줄이면서까지 승진을 좇을 것인가, 아니면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며 지금의 일상을 지켜낼 것인가 하는 고민들 말이에요.


엄마와 이모: 같은 얼굴, 다른 인생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엄마와 이모의 대비였습니다. 같은 얼굴을 하고 태어났지만, 그들의 인생은 완전히 달랐어요. 엄마는 시장통에서 고생하며 가족을 부양했고, 이모는 안정적인 가정에서 우아한 삶을 살았죠.

안진진은 이 두 여성의 삶을 관찰하며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누구의 삶을 살아야 할까? 엄마처럼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갈까, 아니면 이모처럼 안정을 추구할까?”

이 질문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 누구의 삶을 따라가야 할지, 어떤 가치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 우리는 인생의 여러 갈림길에서 비슷한 고민을 반복하니까요. 가족이 전부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가족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안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도약을 꿈꾸곤 하죠.

“모순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순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양귀자 작가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완벽한 선택은 없다. 모든 선택에는 그에 따른 손실이 있고, 우리는 그 손실을 감수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게 바로 인생이라는 거죠.


나영규와 김장우: 두 가지 선택지

안진진 앞에 나타난 두 남자, 나영규와 김장우는 우리가 인생에서 마주하는 두 가지 선택지를 상징합니다.

나영규는 모든 것이 계획되어 있고 빈틈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안진진에게 안정과 확실성을 제시하죠. 반면 김장우는 대책 없지만 마음을 흔드는 사람입니다. 그는 예측 불가능하지만, 그만큼 자유롭고 매력적이에요.

이성적으로 따져 본다면 당연히 나영규를 선택해야겠지만, 우리의 마음은 자꾸만 김장우라는 ‘비효율’을 향해 기울곤 하죠. 왜일까요?

안진진의 마지막 선택을 보며 저는 ‘행복’의 정의가 얼마나 주관적이고 모순적인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나영규가 행복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김장우가 행복일 수 있으니까요.

“행복이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그 선택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부재와 귀환: 끝나지 않는 순환

소설 속에서 아버지는 행방불명과 귀가를 반복합니다. 그는 가족의 곁을 떠났다가 돌아오고, 다시 떠났다가 돌아오는 패턴을 반복하죠. 안진진은 이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동시에 그를 미워할 수도 없었어요.

이 부분은 특히 가슴 아팠습니다. 우리는 때로 완벽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 때가 있거든요. 수없이 실망했음에도 완전히 끊어내지 못하는 사이,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쉽게 놓지 못하는 가족의 인연 같은 것들요.

“모순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현실이다.”


인생은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

소설의 마지막 구절은 언제 읽어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인생은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받아내는 것이다. 살아서 받아내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저는 우리가 매일 추구하는 ‘완벽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인생을 꿈꿉니다. 하지만 정말로 완벽한 것이 존재할까요?

우리는 후회 없는 선택, 아무도 다치지 않는 결정, 항상 옳은 말과 행동만을 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의 삶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나고, 늘어지고, 부족합니다. 인생에는 늘 예기치 못한 변수가 끼어들고, 우리의 계획은 수시로 수정되죠.

안진진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녀는 완벽한 선택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그런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죠. 대신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그 선택과 함께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안고 가는 모든 모순들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우리 삶에 깃든 수많은 모순들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효율을 추구하지만, 때로는 비효율적인 시간이 더 소중할 때가 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잠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아무 쓸모 없어 보이는 수다 한 시간이 이상하게 마음을 살려내기도 하잖아요. 우리는 안정을 원하지만, 때로는 불안정한 도전이 더 의미 있을 때가 있고, 우리는 완벽을 꿈꾸지만, 때로는 불완전한 것이 더 아름다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아요. 모순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현실이라고. 그리고 그 모순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말이죠.


마치며: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는 매일 더 나은 삶, 더 나은 관계, 더 나은 선택을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모든 노력이 무색하게 인생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우리를 끌고 가기도 하죠.

그럴 때 이 책을 떠올려보세요. 내가 내린 선택이 비록 모순적일지라도, 그 선택을 ‘받아내며’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바로 인생의 증명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양귀자 작가는 우리에게 완벽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그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어떤 모순을 안고 살아가고 있나요? 그리고 그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오늘 하루, 여러분의 삶에 깃든 작은 모순들을 기꺼이 안아줄 수 있는 여유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모순들이 결국 우리를 더 풍부하고 깊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세요.

왜냐하면, 모순은 우리의 약점이 아니라 우리의 인간다움을 증명하는 것들이니까요.